"한국서 코인 좀 대신 사줘"…미국인이 부탁했다 [한경 코알라]

입력 2024-01-24 09:54   수정 2024-01-2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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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과 2NE1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필자는 서울 마포 동교동 이른바 ‘홍대’ 지역에 살고 있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세계인이 한국식 칼군무를 추는 영상이 유튜브에 등장하기 시작한 그 시절이다. K팝과 K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홍대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이 늦은 밤 필자가 살던 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홍대입구역은 공항철도로 바로 연결된 역이다. 필자가 거주하던 오피스텔 건물은 홍대입구역 1번 출구에 바로 연결돼 있었다. 외국인의 단기 관광 숙소로 완벽한 건물이었기 해당 건물에 게스트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관리사무소를 찾아갔을 땐 이미 수십 개 호실이 운영 중이었다. 한국어도 영어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24시간 찾아와 바디랭귀지로 본인이 춥다고 호소하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모국어로 화를 냈다. 캐리어를 끄는 관광객들이 가득 차 엘리베이터를 못 타는 경우도 잦았다. 결국 필자는 8년을 거주한 그 오피스텔에서 이사를 나오게 되었다.

오피스텔에서 게스트하우스 영업은 그때도, 지금도 불법이다. 여기저기 항의하다가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는 “걔들은 그냥 벌금 내고 계속 영업해요”였다. 어쩌다 단속이 나오면 벌금이 나오기는 하지만, 하루 이틀 매출에 해당하는 금액밖에 되지 않기에 그냥 벌금을 내고 계속 영업을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업자가 전략적, 의도적으로 법을 위반할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업은 지속될 수 있다는 것.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게스트하우스는 성업 중이다.
에어드롭과 자금세탁 의혹
지난 19일부터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는 사건이 있다. 한 해외 프로젝트가 대규모 에어드롭(가상자산 무상 지급)을 예고한 후 18일 국내 대형 거래소에 상장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사용자들이 에어드롭 신청 페이지에서 에어드롭으로 가상자산을 수령한 후, 거래소에서 팔아 현금화가 가능했다. 그런데 에어드롭 및 상장 당일, 에어드롭 신청 페이지가 모종의 이유로 다운됐다. 많은 사람이 에어드롭을 수령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내 거래소 시세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블록체인상에 해당 자산이 한 지갑에서 대규모로 거래소로 이동한 기록이 포착됐다. 많은 사람이 추적에 착수해 해당 지갑이 프로젝트의 한국인 직원 소유임이 강하게 의심된다는 점, 그리고 약 2095이더리움(약 73억원)이 거래소에서 해당 지갑으로 움직인 정황을 찾아냈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모 국회의원의 거래기록을 찾아낸 경위와 매우 유사하다.)

해당 직원이 73억원 상당의 보너스를 수령한 것인지, 또는 발행사 측이 해당 직원을 통해 국내 거래소에서 자체 발행 가상자산을 현금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발행사는 20일 공지를 통해 "해당 자금은 곧 (프로젝트명) 생태계 프로젝트들에 대한 투자에 사용될 예정"이라며 "자금의 집행과 세무 처리 등은 현지 법률전문가의 가이드에 따라 현지 법률을 준수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물량이 발행사 소유임을 자인한 것이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원화마켓은 한국인 또는 국내 거주 외국인 개인들만 사용이 가능하다. 외국인과 법인은 원화마켓 이용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발행사의 공지대로라면 해외 법인인 발행사가 한국인 직원 계정을 이용해 원화마켓에서 자체 발행 가상자산을 현금화하고, 다시 원화마켓에서 이더리움을 구매해서 거래소 밖으로 전송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가상자산 언론은 이를 '자금세탁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위법인가, 무법인가
필자는 관련법 전문가도, 자금세탁 방지 전문가도 아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발행사와 거래소 계정주, 그리고 거래소의 현행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씁쓸한 점은 이번 사건이 ‘아는 사람만 아는’ 법망의 구멍을 이용한 정황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거래소와 실명 확인 입출금계정 계약이 된 은행 계좌를 가진 한국인 개인이 한국 원화거래소에 가입해서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고, 해당 개인이 거액의 가상자산을 거래소에 입출고하는 것도 불법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 가상자산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도 가상자산 거래소는 사실 확인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거래량과 변동성에서 세계 수위를 달리는 국내 가상자산 원화 시장은 이미 글로벌 가상자산 업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출시된 해외 대형 프로젝트들이 출시 직후 하나같이 한국부터 방문해 설명회를 연 것도 그 관심의 크기를 보여준다. 특금법 시행 후 외국인과 법인의 가상자산 원화 거래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원천적으로 차단됐지만, 이미 많은 법인과 외국인들이 이번 사건과 같은 방법으로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추측하건대 이러한 형식의 거래는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닐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방법이 있다는 소위 ‘컨설팅’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몇 달 전 한국 원화거래소 사용 가능 여부를 필자에게 질문한 미국인은 '정부 방침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필자의 대답에 '이해할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자금세탁이나 범죄의 의도를 가지지 않았으며, 현지 법을 준수하며 단순 매매를 하고 싶은데 그것을 정부가 왜 막냐는 질문과 함께 '사실상'이 정확히 무엇이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필자 또한 그 미국인을 설득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사실상 불가능'을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필자에게 정기적으로 거래를 대행해 줄 수 있는지 물었고, 필자는 흔들렸지만 거절했다.
법, 제도, 신뢰
처벌을 피하는 것이 법과 제도를 준수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시장과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같은 법과 제도를 준수해 질서를 확립하고, 그 질서를 통해 시장과 사회가 더 발전해 구성원들도 동반 성장할 것이라는 신뢰가 그 기저에 있다. 특별한 소수가 그 법과 제도를 의도적으로 우회해서 이익을 취한다면 시장과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신뢰가 훼손된다. 다시 말해, 법과 제도를 믿고 지킬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당국도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주식시장과 닮았지만, 근본부터 다른 가상자산 시장이기에 반백 년 간 다듬어져 온 주식시장과 같은 수준의 규제체계를 단시간에 만들어 내긴 어려울 것이다. 특히 '긴급대책'이 발표된 2017년 말과 특금법이 시행된 2021년의 경우 시장의 열기가 폭발적이었기에 차단과 금지 위주의 정책들이 나온 것도 일견 합리적이다.

문제는 합리적인 시장의 수요조차 '일단 차단'된 상태로 너무 오래 지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생한 '자금세탁 의혹'의 경우 외국인과 법인의 국내 거래소 이용이 합리적인 규제를 통해 허용돼 있었다면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이다. 물길이 난 곳에 벽을 쌓아 올리니 벽이 갈라지고 물이 샌다.

홍대입구역은 전 세계의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팬들이 선호하는 여행지이다. 이곳에 숙박시설 수요가 폭증한 것은 당연하며, 홍대입구역에 직결된 오피스텔에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난 것도 매우 당연하다. 정부는 그곳에 숙박업소가 생겨나는 것을 단순히 '금지'했고, 게스트하우스는 그 오피스텔에 게스트하우스를 설치한 업주는 벌금을 내며 영업을 이어간다. 10여 년이 지난 후 되돌아보면, 결국 그동안 돈을 번 것은 법 위반을 선택한 업주들이었고 시장을 빼앗긴 합법 숙박업소 업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우성이다. 그들은 지난 10여년간 법과 규칙을 위반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것이다.

이제 와 아쉽다. 당시 폭증하던 홍대 숙박시설 수요를 조금 더 합리적으로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숙박객 동선이나 소음, 영업시간 규정 등을 만들거나 높은 수준의 관리가 가능한 업체에만 오피스텔에 숙박업소 설치를 제한적으로 허가하여 피해를 최소화했다면 공존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외국인과 법인이 국내 거래소의 원화마켓을 이용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지만, 우회로까지 모두 차단되지는 않았다. 10년 후, 우리는 가상자산 시장을 어떻게 회고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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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연구위원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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